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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여러 취미들

에두아르 마네

by 도전과 정신 돈이 되는 지혜이야기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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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두아르 마네라는 예술가에 대해 준비했습니다 

재밋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에두아르 마네

마네는  1832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판사였고 어머니는 외교관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마네는 어릴때부터 그림의 열정을 보였고 여러 예술활동을 지향하고 싶어했지만 그의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기 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법조계로 진출을 원했기도 했고 아들의 해군이 되기를 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첫시작은 1849년 토마쿠튀르 화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에 대해 오늘은 준비했습니다 마네의 대표적인 예술작품은 피리부는 소년과  풀밭위의 점심식사 발코니 올랭피아 플리 베르제르의 술집등을 뽑을수 있습니다 


 

피리부는 소년  

피리부는 소년 이 그림에 나오는 소년은 사실 여성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실제 모델을 데려와서 표현한것이 아닌 자신의 이미지을 상상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철저히 자신의 욕망을 그림 이면에 숨겨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 그림이 소년으로 보이게 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아마도 자신의 욕망을 은연적으로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섹슈얼리티가 담겨있는게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여성성을 완전히 배제시킨뒤 오히려 남자 아이처럼 보이게 하므로써 자신의 본질적인 성향을 감추려는 해석이 있는 그림입니다 이때 당시 마네는 자신의 자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알려줘있습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1860년대 출품된 작품으로 낙선전에 전시되어 큰 화재을 낳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낙선전이란 나폴레옹3세의 명령으로 열린 전시회입니다 많은 예술가가 모인 이 전시회에서 특히 단연 마네의 목욕이라는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많은 관심과 함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 그림은 당시사회에서 도덕적 관념에 상반되는 여성의 나체을 노골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고 또 그림이 너무 원색적이며 음탕하다고 하면서 많은 비난을 가해지만 사실 오히려 전시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본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천박하다고 말했던 귀족들 조차 이 그림을 볼때에는 자신의 얼굴을 남몰래 가리면서 그림을 보러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발코니

 마네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써 그는 주로 자신의 지인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것을 즐겼는데 특히 이 그림은 발코니 앞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주변 사람을 대상으로 그린 것으로 알려줘 있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인물은 베르트 모르조라고 하는 자신의 사랑했더 비밀스러운 여성이었는데 마네는 이 여성을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휴식이라는 그림을 뽑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네의 그림 상당수는 자신과 관련된 사람을 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플리 베르제르의 술집  

 

플리 베르제르의 술집  그는 사망하기 1년전에 이 그림을 끝으로 마지막으로 유작인 된 작품입니다 그는 당시 사망전 지독한 병에 시달렸는데 그는 매독 합병증에 걸려 손발이 마비되는 등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고 알려줘 있습니다 이 굉장히 큰 사이즈의 그림(96cm x 1.3m)을 자세히 보면 두 여성이 보이는데 당시 파리의 카페 콩세르에서 일하던 바텐더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카페 콩세르는 당시 파리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교의 장으로 알려줘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상당히 많은 매춘이 이루어져있는 곳이기도 해서 비위생적인 성관계로 인한 매독같은 성병도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알려줘 있습니다

 


아틀리에서의 점심

마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마네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그림의 내면과 숨은 의미을 볼수 없다고 하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아틀리에서의 점심이라는 작품을 보면 가운데에 소년 레옹과 마네의 하인 그리고 소년의 부인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하지만 이 그림을 보면 대상들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잇는지 전혀 나와있지 않아서 여러 해석이 나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네가 이렇게 그림의 대상을 정확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현대 사람들의 시선은 그저 잠깐 작품이 나올때만 관심을 가진뒤 금방 관심이 사라지기 떄문이라는 해석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잠깐의 관심을 가지고 본뒤 곧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저 그림의 형태만 보고 난뒤 현재 일상으로 돌아가는 현대인의 도시생활을 그림으로 표현한게 아닌가 추측도 있습니다 


마네와 수잔

마네의 사랑 이야기

 

당시 마네는 화가가 되기을 결심하고 그림의 몰두햇는데 토마퀴트르라는 화실에서 그림활동을 했다고 알려줘있습니다 이 토마퀴트르 화실로 가기전에 피아노 선생으로 일하는 수잔이라는 여성의 집이 화실 가까운 근처에 위치해있어 마네는 그녀와 자주 만나면서 그녀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으면서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당시 수잔은 19살이었다고 합니다 혼자서 파리에서 외롭게 피아노 선생을 했기때문에 어쩌면 본인의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것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르겠네요  


베르트 모리조

 

 

마네의 아버지 오귀스트가 1862년 매독으로 사망하자 마네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그리고 아버지 사망 1년이 지난후 수잔과 결혼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잔은 10년전에 1852년에 레옹이라는 사생아을 출산했는데 알고보니 이 레옹이라는 자식은 마네의 아버지의 오귀스트의 자식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된 마네는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동생인 레옹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네는 아버지에 대한 경멸을 갖고 있엇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마네에게는 비밀의 여인 베르트 모리조 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소개을 받아 알게된 그들은 서로 호감을 갖고 사랑에 빠졌지만 당시 마네에게는 아이와 아내가 있어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베르트 모리조라는 이 여성을 자주 등장시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네는 이런 모르조와 비밀스러운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당시 자신의 형제인 동생 외젠과 같이 결혼하라고 제안했는데 당시 마네에게 푹 빠져있던 모르조는 이 차선책에 동의했고 결국 1874년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의 와이프로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리조는 동생 외젠을 싫어했고 사랑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이 동생 외젠사이에서 딸을 하나 낳지만 그 딸이 결국 모리조 사망후 폐렴으로 사망하기도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이런 이중성과 경멸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는데도 하지만 자신 또한 아버지처럼  불명예의 유산을 짊어지게 되니 말년에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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